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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밑성형 |
작성일 |
26-10-07 0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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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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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피민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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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코리아
어린 시절 나의 세계사 선생님은 동화책과 TV 애니메이션이었다. <오디세이>가 개봉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우주를 떠돌던 오디세우스였다. 찾아보니 1987년 KBS에서 방영된 <우주선장 율리시스>가 그 주인공이었다.
<원탁의 기사>는 장엄한 필름처럼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지금도 웅얼거릴 수 있는 주제가 뒤로 백마 탄 아서가 바위에 박힌 검을 뽑고 왕이 되는 장면은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다.
<달타냥의 모험>을 보면서는 프랑스에 빠져들었다. 야심 많은 추기경으로부터 왕을 지키기 위해 활약하는 삼총사와 총사를 꿈꾸는 달타냥의 이야기는 프랑스를 잘 모르더라도 더 넓은 세계를 향한 꿈을 키워주기 충분했다.
당시에는 율리시스, 아서 왕, 삼총사가 누군지 몰랐지만, 그 기억이 역사적, 문학적 호기심을 싹 틔우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청소년기에는 이들의 이름이 들어간 책을 찾아 읽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배경에 놓인 역사가 궁금해 공부를 하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캐릭터는 '로빈 훗'이었다. 디즈니 동화책으로 처음 만난 로빈 훗은 포악한 왕과 귀족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유쾌한 의적이었다. 어깨에 활을 걸치고 모자를 쓴 로빈 훗은 여우였다. 충직한 친구 '리틀 존'은 곰이었고, 왕관을 쓴 '존 왕자'는 사자였다.
다른 캐릭터보다 이해하기 쉬워서였을까. 아니면 그때부터 반골 기질이 흘렀던 것일까. 어쩌면 익숙한 홍길동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였을지도 모른다. 난 '의적'이 왕이나 총사보다 좋았다. 백성들 편에서 부패한 권력을 시원하게 놀리는 모습은 막 한글을 떼고 동화책을 읽는 아이의 마음에 깊이 그리고 오랫동안 남았다.
로빈 후드의 역사
로빈 훗의 이름이 로빈 후드(Robin Hood)라는 사실은 안 건, 1991년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했던 영화 <로빈 훗>의 영문 제목을 보고 나서였다. 동화 속 인물로만 알았던 그의 두건 속에 숨어있는 역사를 파헤쳐 보게 된 것은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2010년 개봉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로빈 후드>를 보고 난 후였다.
리들리 스콧은 '로빈 후드'를 중세 영국 역사 속 인물로 재탄생시켰다. 1066년 앵글로색슨의 왕 해럴드는 프랑스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과 벌인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패하며 왕권을 내어준다. 색슨족 애설스탄이 잉글랜드를 통일하고 왕이 된 지 140여 년 만이었다.
이후 영국 왕실은 바이킹족 출신 프랑스 귀족들이 차지하고 앵글로색슨은 피지배 계층으로 밀려났다. 영국 왕은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이 흔적은 지금까지 언어에 남아 있다. 가축을 의미하는 소(cow)와 돼지(pig)가 식탁에 오르면 프랑스어에서 온 비프(beef)와 포크(pork)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가축을 치는 사람은 앵글로색슨이었지만, 고기를 먹는 사람은 프랑스 출신 귀족들이었다.
로빈 후드의 배경인 12세기 말은 사자왕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리처드 1세가 3차 십자군 원정을 떠난 시기였다. 그는 10년간 겨우 6개월 정도만 잉글랜드에 머물렀다. 당연히 리처드 1세 치하의 정국은 녹록지 않았다.
▲ 사자왕 리처드 1세. 그의 동상은 웨스트민스터 앞에서 볼 수 있다.
ⓒ 위키피디아
오랜 전쟁을 치르기 위해 백성들은 무리한 세금을 내어야 했고, 왕의 부재를 틈탄 정치적 불안이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실제 역사에서 리처드 1세 동생, 존은 프랑스 필리프 2세와 결탁하고 왕권을 차지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14세기 백성들의 구전으로 전해지던 로빈 후드는 자유농이지만 16세기 엘리자베스 1세 시기를 거쳐 20세기 노르만 왕에 맞서는 색슨 귀족으로 각색되었다. 리들리 스콧은 중세의 혼란한 시대를 직설하기 위해 로빈 후드가 귀족이었다는 지배자 시.을 배제하고 민중의 전설을 그대로 소환했다.
십자군 원정에 따라나선 로빈 후드의 이름은 '로빈 롱스트라이드'다. '롱스트라이드'는 '성큼성큼 걷는 사람'을 의미한다. 궁수로 활약하던 로빈은 전쟁 중 리처드 1세가 전사하자, 동료들과 귀환을 결심한다. 하지만 자신의 앞에서 죽음을 맞은 귀족, 로버트 록슬리의 부탁을 받고, 그의 칼을 아버지, 월터 록슬리에게 돌려주려 노팅엄으로 향한다.
앞을 보지 못하는 월터 록슬리가 칼을 가져온 로빈의 이름을 듣자마자, 색슨의 이름이라며 반가워하는 장면에서 영화는 계급을 신분에서 민족의 영역으로 끌고 온다. 월터는 색슨족이지만 노르만 정복 왕조의 기득권을 누려온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아들의 죽음과 자신의 영지에 사는 백성들의 궁핍함이었다.
리처드 사후, 왕이 된 존은 무능하고 폭정을 일삼는 인물이었다. 영화 속에서 존 왕은 반란을 일으킨 귀족과 자신의 심복, 고드프리의 배신 속에 프랑스 군대의 침략까지 심대한 위기를 동시에 맞는다.
모든 것이 엉켜버린 순간 로빈이 등장한다. 월터의 부탁으로 로버트 록슬리가 된 그는 왕과 귀족들의 갈등 봉합을 위한 제안을 던진다. 조건은 무소불위 왕권을 내려놓고 법에 의한 자유를 보장하라는 것. 이미 프랑스군이 영국 해협에 도달했다는 소식을 들은 존 왕은 '대헌장'을 작성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드디어 시작된 프랑스와의 전투. 로빈과 친구들은 전장의 경험을 살려 영국군을 이끌고, 필리프 2세가 지켜보는 가운데 프랑스군을 격파해 버린다. '자유'라는 명분으로 노르만 지배 계급을 설득해 낸 로빈 롱스트라이드가 외세의 침략에 맞서 '하나의 잉글랜드'를 일궈낸 영웅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꿀과 곡물로 만든 술
로빈이 머문 록슬리 영지에는 양봉을 하는 수사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터크. 사실 그는 기도보다 벌을 치고 양조를 하는 일이 천성에 맞는 사람이었다. 중세 수도원에서 벌은 특별한 존재였다. 짝짓기 없이 태어난다고 믿어졌기에 순결의 상징으로 통했다. 벌집의 밀랍은 제단을 밝히는 초가 되었고, 꿀은 단맛을 내는 조미료이자 상처에 바르는 약으로 사용되었다. 무엇보다 발효를 돕는 귀한 양조 재료로 여겨졌다.
터크 수사는 자신이 빚은 술을 로빈의 친구들에게 맛 보여 주며 미드(mead)라고 소개했다. 미드는 곡물 발효주, 에일과 더불어 고대 브리튼부터 존재한 술이었다. 하지만 최고의 발효원이었던 꿀은 구하기 힘든 귀하디귀한 존재였다.
자연스레 미드는 지배 계급이 즐기는 술로 정착했다. 바이킹들은 명예롭게 전사하면 발할라(전사들의 전당)에서 원 없이 미드를 마시는 걸 꿈꾸기도 했다. 로빈과 친구들은 처음에 미드가 무슨 술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색슨족의 술을 색슨족이 알지 못할 정도니, 미드가 민중이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술이 아니라는 사실을 영화도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런데 영화를 보며 의문이 들었다. 저 술이 정말 미드일까? 아무리 양봉을 한다지만 미드를 평민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나눠주는 장면이 마뜩잖았다. 그러던 중, 터크 수사와 로빈이 술통을 두고 만나는 장면에서 눈이 번쩍 뜨였다.
"곡물과 꿀로 만든 술입니다."
그 순간, 한 단어가 머릿속을 관통했다. '브라갓'(Braggot).
곡물과 꿀을 이용해서 만든 술, 브라갓은 고대 웨일스어 브라가우드(Bragawd)에 어원을 두고 있다. 고대 북유럽에서는 곡물로 술을 빚을 때 발효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꿀을 첨가하곤 했다. 고대인들에게 술은 와인, 에일, 미드로 구분되는 장르가 아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알코올을 이끌어내고, 산패 없이 관리하는 것만이 중요한 과제였다.
▲ 한때 사라졌던 미드는 한국에서 지역 특산주로 인정받은 덕분에 인터넷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
ⓒ 윤한샘
중세로 넘어오며 브리튼의 술은 재료에 따라 미드, 브라갓, 에일로 나뉘었다. 꿀로만 빚는 미드는 가장 귀한 술이었고, 꿀이 첨가된 브라갓도 에일보다는 값진 술이었다. 곡물로 빚은 에일은 백성들이 물처럼, 밥처럼 마시던 일상의 음료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에일은 미드와 브라갓을 역사 밖으로 밀어내며 영국 술의 주인공이 된다. 양조 기술의 발달로 곡물만으로 충분히 당을 얻어낼 수 있었고 설탕이 수입되며 꿀에 대한 수요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16세기 무렵 에일(ale)은 홉이 들어간 맥주(beer)와 구분되기도 했다. 17세기 들어서야 에일 양조에 홉이 본격적으로 사용되며 둘의 경계가 흐릿해졌다. 산업혁명 후에는 맥주가 대량 생산되면서 미드와 브라갓은 거의 자취를 감춰 버렸다.
<로빈 후드>에서 상류층의 술은 미드가 아닌 와인이다. 영국 왕이지만 영어를 거의 쓰지 않던 사자왕 리처드는 목에 화살을 맞고 죽기 직전, 와인을 찾는다. 색슨의 피가 흐르는 월터 경이 평상시 마시는 술도 와인이었다.
나는 영화에서 미드가 민중들이 마시는 술로 등장한 이유가 당시 노팅엄 상황에 대한 설정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로빈이 도착한 록슬리 영지는 과도한 세금으로 곡물이 고갈된 상태로 그려졌다.
당장 다음 해 뿌릴 씨앗도 모자란 마당에 어떻게 에일을 만들 수 있겠는가. 곡물은 거듭된 수탈로 바닥났지만, 다행히 터크의 벌통에는 꿀이 있었다. 부족한 곡물에 꿀을 보태 빚은 술, 평소라면 에일보다 귀했을 미드와 브라갓이 오히려 가난해진 마을의 잔을 채웠던 것은 아닐까. 가끔 술은 '알아두면 쓸 데 있는 영화의 잡학 상식'을 높여주기도 한다.
마그나 카르타
▲ 영화 <로빈후드> 스틸컷.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코리아
프랑스 침략에서 벗어난 뒤, 왕과 귀족들은 한자리에 모인다. 리들리 스콧은 리처드 사망으로부터 16년의 시차를 영화적 상상력으로 압축했다. 법으로 무소불위 왕권을 제약한 헌장의 이름은 '마그나 카르타', 존 왕은 1215년 6월 러니미드 초원에서 이 문서에 인장을 찍었다. '군주라 할지라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마그나 카르타의 기본 원칙은 훗날 입헌주의와 법치주의로 자라나는 귀한 씨앗이 되었다.
마그나 카르타에는 술에 관한 내용도 들어있었다. "에일의 도량형을 하나로 하라"는 35조는 민초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조항이었다. 중세 왕실과 귀족들은 곡물이나 에일 같은 현물로 세금을 걷을 때, 자신만의 도량형을 악용해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곤 했다,
동네 어귀에서 에일을 판매하던 에일와이프(alewife)들은 이런 피해를 고스란히 맞았던 계급이었다. 지역마다 제각각이던 도량형 탓에 작은 잔으로 에일을 팔았다며 벌금을 무는 경우가 허다했다. 에일 한 잔의 규격을 하나의 도량형으로 통일한 마그나 카르타의 조항은 권력이 아닌 법이 공정의 잣대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존 왕은 마그나 카르타를 곧바로 부정했다. 역사에서는 교황을 움직여 두 달 만에 백지화 선언에 이르렀고, 서명한 귀족들을 파문했다. 영화에서는 이를 주도한 로빈 후드를 무법자로 간주하고 수배를 내렸다. 로빈과 그를 따르는 무리는 셔우드 숲에서 의적의 삶을 선택했다. 색슨과 노르만 가릴 것 없이 부당한 억압에 신음 하는 모든 민중을 품는 '보편적 자유인'의 길을 선언한 것이었다.
존 왕은 약속을 깬 대가를 치렀다. 약속이 파기 되자 귀족들은 반란을 일으키고 전면적인 내전에 돌입했다. 결국 훗날 루이 8세가 되는 프랑스 왕세자를 영국 왕으로 추대하며 런던으로 불러들였고, 존 왕은 이들과 싸우던 도중 1216년 10월 비참하게 최후를 맞았다.
그나저나, 셔우드 숲에서 터크 수사는 어떤 술을 빚으려나? 벌을 사랑하니 숲에서 양봉을 하며 자유인이 된 동지들에게 왕족들이 즐기는 미드를 아낌없이 나눠주지 않았을까? 그들이 나누는 자유롭고 뜨거운 연대의 잔을 상상하며, 건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끊임없이 지속되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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