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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밑성형 |
작성일 |
26-09-25 21:23 |
조회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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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피민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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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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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 페리뇽이 잠들어 있는 생피에르 수도원 교회는 마을 꼭대기에 있습니다. 순례자들은 교회 바닥의 묘비 앞에서 잠시 숙연해졌다가, 언덕 아래로 펼쳐진 마른 계곡의 포도밭을 내려다보고, 기념품 가게에서 병 하나를 사 들고 돌아갑니다. 반나절이면 충분한 코스죠.
하지만 조금만 더 이 마을에 머문다면 훨씬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연간 생산량이 많아야 수만 병에 불과한 소규모 샴페인 생산자들이 이 언덕에 옹기종기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샴페인 라벨 구석에는 깨알 같은 두 글자가 숨어 있습니다. NM이면 포도를 사들여 만드는 네고시앙 하우스, RM이면 자기 밭의 포도로만 만드는 재배자 생산자입니다. 모엣 샹동이나 뵈브 클리코처럼 우리가 아는 이름은 대개 앞쪽이고, 오빌레 골목의 집들은 대개 뒤쪽입니다. 재배부터 양조, 병입, 판매까지 한 가족이 도맡는 이 작은 집들에서는, 라벨의 이름이 곧 문패의 이름이고, 문을 열어주는 사람이 곧 포도밭 주인입니다.
지난 6월, 그 언덕에 올랐습니다. 목적지는 마을의 한 작은 하우스, 샴페인 조셉 데뤼에(Joseph Desruets)였습니다. 하고 많은 하우스 중 한국에 잘 알려지지도 않은 이 집을 찾은 이유는 하나입니다. 1888년부터 6대째 이어져 온 이 하우스의 현재 주인이, 서울에서 태어난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마티아스 은 데뤼에와 토마 김 데뤼에. 어디선가 들어본 단어 사이에 끼어 있는 익숙한 한국어가 썩 반갑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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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서울에서 태어나 샹파뉴의 양조가 부부에게 입양됐고, 이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수년 전 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국내에 얼굴을 알린 적도 있는데요. 하우스 소개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선조들의 땅인 한국에, 와인에 대한 열정을 전하기로 선택했다.” 실제로 동생 토마는 몇 해 전부터 한국으로 건너와 살며 와인 관련 비즈니스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이야기에서 우리는 독일과 스위스에서 국경을 넘어와 샴페인 하우스를 세운 사람들을 만났는데요. 그 국경 넘기의 가장 최근 버전이 바로 이 형제입니다. 다만 방향은 반대입니다. 19세기의 이방인들이 샴페인을 만들기 위해 이 땅으로 건너왔다면, 21세기의 형제는 샴페인을 들고 자신들이 태어난 땅으로 건너가는 중이니까요.
낯익은 얼굴, 낯선 언어
마을 가운데 있는 하우스에서 만난 마티아스는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이었습니다. 첫인상은 영락없는 한국 사람, 그것도 40대 중반 보통의 한국인 남성 그대로였죠. 그러나 그는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했고, 영어도 서툴렀습니다. 프랑스어로 자란 프랑스 사람이니 당연한 일인데, 낯익은 얼굴에서 낯선 언어가 나오는 그 몇 초의 어긋남이, 그가 이 하우스에서 자라온 세월을 어떤 설명보다 압축해서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하우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창업하던 1888년부터 써 온 떡갈나무 사각 압착기였습니다. 한 번에 포도 4톤을 품는 이 거대한 목조 기계 앞에 서면 일단 그 크기에 압도당합니다. 뒤이어 138년 동안 여섯 세대의 손이 같은 기계로 포도를 눌러 왔다는 얘기를 듣게 되면, 그 역사에 다시 한번 압도당하고요.
효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집은 배양 효모를 일절 쓰지 않고 포도 껍질에 붙어 온 토착 효모만으로 발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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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 하우스들이 스테인리스 탱크와 정밀 온도 제어로 일관성을 설계하는 동안, 이 집은 반대 방향의 고집으로 정체성을 지켜온 것입니다. 연간 생산량은 약 2만병. 앞서 다룬 하우스들의 100분의 1 규모지만, 느껴지는 자부심의 크기만큼은 다른 하우스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땀으로 치르는 일
멀리 유라시아 동쪽 끝에서 온 여행자에게 마티아스는 하우스에서 생산하는 샴페인을 하나하나 시음하게 해줬습니다. 그중 그가 유독 애착을 보인 것은 가문에서 가장 오래된 피노 누아 밭만 따로 떼어 만든 블랑 드 누아였습니다. 샴페인 특유의 경쾌함 속에 묵직한 뼈대가 느껴지는 술이었죠.
원래는 마주 앉아 긴 이야기를 나눌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마티아스는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된 채 약속 시간에 늦었습니다. 이상기후 탓에 포도밭을 살피느라 그랬다더군요. 폭염이 샹파뉴의 밭을 바꾸고 있다는 얘기는 샹파뉴 여행 내내 나왔습니다만, 대형 하우스에서라면 그것은 회의실에서의 의제로 다뤄졌을 겁니다. 하지만 연간 생산량 2만병짜리 하우스에서는 주인이 직접 땀으로 치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나타난 그가 미안했는지 예정에 없던 제안을 했습니다. .심이라도 같이 하자고요. 마을 식당으로 내려가는 길, 비탈의 포도밭을 잠깐 함께 걸었습니다. 그는 한 시간 남짓 식사 시간 동안 한국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굳이 캐묻지도 않았고요. 다만 그는 이런 말은 했습니다. 자라는 동안 ‘동생은 공부를 곧잘 했고, 자기는 공부에 흥미가 없어 집에서 부모님 일손을 도우며 일을 배웠다’고.
대한민국의 어느 흔한 밥집에 마주 앉아 들을 법한 형제의 이야기를 서울에서 태어나 프랑스의 시골 오빌레에서 자란 사람의 입으로 듣는 순간, 문득 이 사람에게서 한국인 특유의 정 같은 것을 느꼈다면 너무 감상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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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헤어질 때, 마티아스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호방하게 웃었습니다. 언제든 다시 들리라고. 그때는 반드시 저녁을 함께하자면서요.
다음 장을 쓰는 사람들
오빌레를 떠나오며 생각했습니다. 지난 몇 주간 만난 샴페인의 역사를요. 맥주에서 발효법을 훔쳐 온 사람, 영국 입맛에 맞춰 설탕을 뺀 사람들, 국경을 넘어와 왕의 서명으로 프랑스인이 된 사람. 시대도 국적도 제각각이지만 하나의 공통.이 있었습니다. 모두 어딘가에서 이 땅으로 건너와, 이 땅의 술을 자기 것으로 만든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그 계보의 가장 최근 페이지에 서울에서 온 마티아스와 토마 형제가 있습니다. 샴페인 이야기의 마지막이 이 작은 하우스가 된 건 우연이지만, 돌아보니 필연 같기도 합니다. 샴페인의 역사란 결국 낯선 곳에 도착한 사람들의 이야기고, 그 이야기는 지금도 진행형이니까요. 오빌레 언덕 위, 138년 된 압착기 곁에서, 서울에서 온 형제가 그다음 장을 쓰고 있습니다.
※ 매경+ 와인프릭에서 더 자세히 다룬 이야기
- ‘피노의 심장’ — 가문에서 가장 오래된 피노 누아 세 구획만으로 2014년부터 만들기 시작한 블랑 드 누아 ‘쾨르 드 피노(Coeur de Pinots)’, 화려한 화장기 없이 골격으로 승부하는 이 샴페인이 디캔터 어워드에서 받은 .수
- 재봉틀을 싱거, 트랙터를 존 디어라 부르듯 — 압착기의 대명사가 된 회사 이름 ‘다르크-플라맹’과, 1888년 그 기계가 이 집에 들어온 사연
- 비탈의 포도밭을 함께 걸어 내려간 。심 — 예정에 없던 식사 자리에서 마티아스가 들려준, 서울에서 태어나 오빌레에서 자란 형제의 어린 시절
와인은 시간이 빚어내는 술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와인의 역사도 시작됐습니다. 그만큼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데요.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국제공인레벨을 보유한 기자가 재미있고 맛있는 와인 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
페리뇽이 샴페인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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