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분 |
눈밑성형 |
작성일 |
26-09-26 21:06 |
조회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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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피민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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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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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전날, 연락두절 된 엄마
지난주의 일이다. 나는 전신마취 하에 수술을 받기로 되어 있었다. 웬만한 수술은 회복을 위해 몸을 조금씩 움직이라고 하지만, 이 수술을 받으면 적어도 2주간은 꼼짝 않고 누워 있어야 한다. 그래서 친정엄마가 또 한 번 서울로 출동하기로 약속했다.
▲ 콩자반 멸치박스로 한 박스분량의 서리태와 땅콩으로 만든 콩자반이 도착했다. 누가 다 먹을 것인가.
ⓒ 손미희
하지만 엄마는 서울행을 앞두고도 좀처럼 몸을 사리지 않았다. 최근 장례식만 일곱 군데를 다녀왔고, 우리 집에 보낼 김치를 담그고 평생 먹어도 다 못 먹을 콩자반을 만들었다. 이 반찬들과 이불 네 채를 사서 우리집으로 부치는 열정을 불태웠다.
원래도 체력이 남다른 사람이었다. 말린다고 들을 것 같지 않아 그저 환절기에 음식과 감기 조심하고, 올라올 때까지라도 무리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런데 수술 전날 하루 종일 엄마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내 수술은 이른 아침이라, 전날 꼭 엄마와 통화를 하고 싶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마음이 불안해졌다. 그리고 늦은 밤이 돼서야 친정오빠를 통해 엄마가 급성 장염으로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갔다는 사실을 들었다.
다른 건 다 제치고 엄마가 무사한지가 제일 걱정됐다. 엄마는 휴대폰을 어딘가에 두고 온 모양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다고 했고, 통화할 상황도 아닌 듯했다. 나는 뜬눈으로 꼬박 밤을 새웠다. 새벽부터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끝내 엄마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채 수술실로 들어갔다.
▲ 새벽부터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끝내 엄마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채 수술실로 들어갔다.
ⓒ mausejor on Unsplash
수술실은 생각보다 넓었다. 온통 은색인 집기들 사이로 흐르는 공기가 차가워 오스스 몸이 떨렸다. 좁은 수술대에 눕자, 의료진들이 투명 마스크를 입에 댔다.
"자, 걱정 마시고 숨 쉬세요. 천천히 마취될 겁니다. 편히 눈감고 계세요."
마취 가스는 메스꺼웠다. 그러면서도 어찌나 강력한지 조금 전까지 온갖 걱정이 꼬리를 잇던 내 머릿속을 5초도 걸리지 않아 종료시켰다. 분명 엄마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회복실이었다. 마취 가스 탓인지 나는 계속 구토를 했다. 그 와중에도 엄마와의 통화는 성사되지 않았다.
내가 수술실에 들어간 사이 남편과 큰딸은 엄마와 직접 통화를 했다고 했다. 무사히 입원해있고, 염증수치가 높아 당분간 치료받아야 하지만 목소리는 괜찮더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런데 잠깐. 내 전화만 왜 안 받지? 화가 났다. 집요한 전화 공격이 시작됐다.
화장실에 쓰러진 엄마를 구한 사람들
몇 번이나 걸었을까. 한밤중에야 겨우 엄마와 연결됐다. 이틀치의 서운함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왜 전화를 안 받았냐고 소리를 내질렀다. 수술 뒤 배에 힘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의사의 조언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아니, 걱정할까 봐 미안해서 그랬지. 내가 니 전화를 받을 면목이 없어서…."
엄마는 코에 산소까지 낀 채 쉰 목소리로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해서 전화를 피하다니. 화를 내려 했는데 목이 메었다. 내가 아무리 나쁜 딸이어도 엄마가 쓰러져서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데, 나를 도와주러 서울에 오지 못한다고 원망할까.
그래도 엄마가 괜찮다는 걸 알고 나니 안도가 됐다. 병실에 누워 기운 없는 목소리로 "미안하다", "왜 전화를 안 받았냐"며 티격태격하는 상황에 결국 둘 다 피식 웃고 말았다. 안도는 안도고, 잔소리는 해야 했다. 전날까지 바깥에서 빙수며 빵이며 속 탈 나기 좋은 것들을 먹고 사람들을 만나러 다닌 엄마는 이미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사람들을 좋아해? 내가 집에 좀 있으라고 했지?"
나중에야 들었다. 아파서 화장실에 쓰러져 있던 엄마를 구한 것이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단골 카페에서 차를 마시던 엄마가 속이 좋지 않다며 가방과 핸드폰을 두고 집으로 간 뒤 돌아오지 않자, 카페 주인 부부는 엄마를 찾아 나섰다.
연락이 닿지 않자, 가까이 사는 내 사촌동생에게 전화를 했고, 사촌동생은 자신의 엄마에게, 그렇게 전화는 돌고 돌아 친정오빠에게까지 닿았다. 결국 오빠가 집으로 달려가 쓰러져 있는 엄마를 발견했던 것이다.
엄마가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계속 들이닥쳤다. 성당 신부님과 교우들은 함께 찾아와 쾌유를 비는 기도를 했고, 숙모는 병원식만 먹어야 하는 엄마가 영양이 모자랄까 전복죽을 끓여왔다. 그런데 딸은 멀리서 잔소리나 하고 있었다. 엄마의 회복에 아무 쓸모없는 지분만 차지하고 있었다.
이쯤 되니 조금 억울했다. 걱정은 걱정대로 했다. 분명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다 엄마가 탈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엄마를 구한 것은 그 사람들이었다. 얄궂게도 말이다. 그 고마운 사람들에게 절을 했으면 했지, 원망할 이유는 없었다.
사람 사이에는 바람이 불어야
그제야 내 휴대폰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수술 전날 엄마가 올라오지 못한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바빠진 내 사람들의 메시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집 청소라도 해주겠다는 도우미 자원부터, 콩자반도 저렇게 많으니 밥이나 해주겠다는 언니 문자는 다시 읽어도 웃겼다. 다음날로 예약된 미장원 뿌리염색을 하루 앞당겨야겠다는 친구도 있었다. 도와주러 서울로 오고 싶지만 흰 뿌리는 어쨌든 덮고 와야 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평소에는 자기 곁에 누가 있는지 잘 모른다. 너무 가까이 있어 늘 있는 풍경처럼 지나치기 때문이다. 한번 크게 휘청하고 보니 그제야 보였다. 엄마의 전화만 기다리고 있던 내 곁에, 그런 날 걱정하는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수술 전에는 긴장을 풀어주려 그렇게 웃겨주던 사람들이 수술 잘 끝났는지 물어보는 메시지들은 어찌나 조심스럽던지. 하나같이 노안으로 침침해하면서도 끊임없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렇게 위로를 전해주고 있었다. 내 곁에 이렇게 수많은 바람들이 나도 모르는 새 스며들어 불안해 하는 나를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퇴원을 한 엄마는 현관 앞에 '면회사절'을 써 붙여 놨다. 당분간 집에 머물며 음식을 잘 챙겨먹겠다며 걱정 말라고 큰 소리를 친다. 하긴, 엄마를 걱정하기에는 나도 내 몸 챙기기에 바쁘다. 집 앞에 동네 동생이 놓고 간 달콤한 배를 먹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사람 사는 곳에는 모름지기 바람이 불어야 한다. 생각해보니, 나도 제법 바람이 든 사람이다.
《 group 》 요망진 중년 : https://omn.kr/group/2026_midlife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처럼 요망지게(야무지게), 똘망똘망하게, 유쾌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게 살아온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대로 했다. 분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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