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분 |
눈밑성형 |
작성일 |
26-10-03 15:42 |
조회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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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피민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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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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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발.은 이랬다. 헤비메탈은 앨범 재킷부터 불량하다며 꼬투리를 잡았다. 온통 해골과 악마, 괴기스러운 그림들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악마 숭배'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당시 한국 보수 기독교계를 휩쓸던 '백워드 매스킹(음악을 거꾸로 틀면 사탄의 메시지가 들린다는 음모론)' 공포는 이러한 낙인에 기름을 부었다.
서구 밴드들이 상업적 재미와 무대 연출을 위해 차용했던 시각적 장치들을 한국 사회는 한때 '진짜 악마를 소환하는 의식'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심지어 서태지와 아이들 역시 음악에 백워드 매스킹(Backward Masking)을 차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악마의 음악'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그런 음악을 듣다가는 영혼이 타락하고, 잘못하면 지옥에 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서슴없이 나왔다. 한 서양 데스메탈 밴드는 연예 프로그램이 아닌 9시 뉴스에 '유해 음악'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1970년대생인 필자 역시 당시 그토록 좋아했던 헤비메탈 음악을 마음 놓고 들을 수 없었다. 교회 집사님이셨던 부모님과 주변 어른들의 눈을 피해 몰래 헤비메탈을 들어야 했다.
박해 아닌 빅해를 당한 서양 메탈 밴드들
그 시절 '사탄의 음악'이라 불리던 헤비메탈을 대표하는 밴드를 하나 꼽으라면 단연 영국 뉴캐슬을 기반으로 결성된 3인조 밴드 베놈(VENOM)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베이스와 보컬을 도맡아 밴드를 이끌었던 프런트맨 콘래드 '크로노스' 란트(Conrad "Cronos" Lant)가 있었다.
사실 베놈의 멤버들은 진짜 악마 숭배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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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드의 아이덴티티를 더욱 사악하고 위협적으로 보이게 만들기 위해 오망성과 바포메트(염소 머리) 같은 이미지를 일종의 기믹(Gimmick), 즉 상업적 전략으로 차용한 밴드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앨범 표지의 시각적 장치만으로 음악 전체를 '악마의 음악'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음악을 듣고 판단하기보다, 겉으로 보이는 충격적인 이미지에 먼저 반응했던 셈이다.
80년대 초 서슬 퍼런 '공연윤리위원회'의 국가 검열과 종교계의 탄압이 맞물리던 당시 한국에서 이들의 불경한 앨범이 정식 발매될 리 만무했다. 결국 나와 같은 당시의 메탈 키드들은 세운상가나 청계천 등지에서 은밀하게 유통되던 '빽판(불법 복제 LP)'을 통해서만 베놈을 접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건, 어른들이 극렬하게 반대하고 국가가 금지할수록 조악한 음질의 빽판을 통해 듣는 베놈의 음악은 억눌린 청춘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짜릿한 금단의 열매'가 되었다는 .이다. 전면 수입 금지됐던 이들의 음악은 1996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음반 사전심의제가 폐지된 이후에야 비로소 대형 음반 매장의 수입 코너를 통해 국내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만 보자면 당시 일부 종교계의 판단 근거가 음악 자체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보다는 앨범 표지와 자극적인 외모, 무대 이미지 같은 시각적 장치에 더 크게 의존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 예로 베놈보다 선배인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의 경우 밴드명을 해석하자면 검은 안식일이었다.
이들 역시 당시 악마주의의 상징처럼 취급됐지만, 사실 그들의 노래 상당수는 악마 숭배라기보다는 전쟁과 인간의 악, 공포와 초자연적인 소재를 다룬 것이었다.
▲ 영국의 익스트림 메탈 밴드 베놈(VENOM)이 1981년에 발매한 데뷔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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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멜론
역사가 된 자유롭고 실험적인 시도
1980년대 초반, 주류 헤비메탈 씬은 쥬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나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처럼 정교한 연주력과 깔끔한 스튜디오 프로듀싱을 최고의 앨범으로 기준 삼고 있었다. 이들은 고음으로 치달아 천장을 뚫을 듯한 보컬과 파괴적이며 현란하고 정확한 기타 솔로 구현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베놈이 1981년 데뷔작 'Welcome to Hell'을 통해 들려준 사운드는 당대의 메탈 밴드들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변칙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기타는 거칠었고, 스피디한 드럼의 비트와 박자는 정교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치 모든 것을 극악무도한 소음으로 밀어붙이는 듯했다. 여기에 크로노스의 거칠고 짐승의 소리같은 보컬까지 더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 듣고 싶어지는 음악이었다.
바로 그 '불완전함'과 '날것의 연주'가 베놈의 힘이었다. 세련되지 않고 자유스러우면서도 압도적으로 어두운 분위기, 다소 실험적인 음악을 통해서 대중의 음악적 취향을 맘껏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을 이들은 증명했다.
그렇게 1982년 발표한 정규 앨범 'Black Metal'은 훗날 앨범 타이틀 자체가 하나의 장르명이 될 정도로 거대한 임팩트를 남겼고, 이후 북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익스트림 메탈 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베놈의 음악은 당시 무명이었던 메탈리카(Metallica)와 슬레이어(Slayer) 같은 후배 밴드들이 이들의 거친 사운드와 무대 매너에 깊은 영향을 받을 만큼 강한 인상을 남겼다. 베놈 특유의 맹렬한 속도와 거친 질주감은 이후 스래시 메탈(Thrash Metal)이 발전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자 결정적인 자극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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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부산 록 페스티벌(Busan Rock Festival)에 헤드라이너로 참가 중인 기타리스트 겸 보컬 데이브 머스테인(현 메가데스 리더)에게도, 과거 베놈이 선보인 극악무도한 사운드는 메가데스 특유의 '테크니컬한 연주력'을 완성시키는 데 큰 영감을 주었다.
▲ 익스트림 메탈의 선구자, 베놈(VENOM) 크로노스 영면하다
ⓒ 베놈 페이스븍
지옥행 열차가 아닌, 자유의 소리를 남기고 떠나다
지난 1일(현지시간), 45년간 밴드의 중심이자 프론트맨, 베이시스트였던 크로노스의 타계 소식이 전해졌다. 향년 63세. 영국 <가디언> 등 주요 외신 보도에 따르면 유족과 밴드 측은 정확한 사망 원인을 공개하지 않았다. 필자를 비롯해 그의 음악을 기억하고 사랑해 온 전 세계 익스트림 메탈 팬들에게는 갑작스럽고 안타까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우리는 그 음악이 왜 그렇게 좋았는지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그저 세상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좋았고,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거칠고 강렬한 소리가 좋았다. 그래서 핍박받던 밴드의 뮤지션 크로노스의 죽음은 내겐 단순히 한 음악인의 떠난 빈자리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내게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과도 같았던 사람이 세상을 떠난 것처럼 느껴진다. 동시에 내 청춘 한구석에 자리했던 한 시대가 조용히 막을 내리는 것만 같다.
오랜만에 베놈의 음악을 다시 들으니 1980년대의 작고 어두웠던 내 방 한구석이 떠오른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턴테이블에 LP를 올리고, 세상에 들키지 않으려는 듯 볼륨을 낮춘 채 홀로 고개를 흔들던 소년. 그 소년에게 크로노스의 음악은 어른들이 말하던 '지옥행 열차'가 아니었다. 오히려 답답했던 세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준 자유의 소리였다. 그래서 더 고맙다.
오늘만큼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당신이 남긴 그 음악을 마음껏 들어보련다. 한때 세상이 별다른 이유 없이 금지했던 그 자유를 오늘은 마음껏 만끽하련다.
Rest in peace, Cronos.
(Judas Pr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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