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엘성형외과의원 | Sinsal Plastic Surgery (Sinsa L) - 눈밑지방재배치·눈밑지방제거·하안검·상안검
구분
눈밑성형
작성일
26-09-29 03:13
조회
2
이름
피민준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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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군산은 금강·만경강 하구에 자리한 항구도시로, 예로부터 포구가 10여 개에 달했다. 그중 경포(서래장터), 죽성포(째보선창), 궁포(구암포), 서포(원서포), 나포(원나포) 등은 군산의 5대 포구로 꼽혔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고려 시대 전국 12개 조창(漕倉) 중 하나인 임피 진성창 세곡을 개경으로 올려보내는 통로였던 서포(西浦)가 가장 오래된 포구였다는 것. ▲  드론으로 찍은 군산시 나포면 서포리 일대(고속도로 아래 붉은 원이 ‘김호겸 가옥’) ⓒ 신상철 군산시 나포면 서포리(원서포) 상공에서 드론으로 찍은 사진이다. 녹색의 향연이 아름다운 오성산(227m) 자락과 고즈넉한 원서포(예전 포구가 있던 마을). 백제 멸망과 삼천궁녀 한을 품고 유유히 흐르는 금강, 군산 시민의 혼이 담긴 금강 너머로 평화롭게 펼쳐지는 충남 서천군 산하(山河), 남북으로 쭈~욱 뻗은 서해안고속도로(금강대교)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포는 오성산 끝자락에 자리한 포구마을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서시포', '서호', '수해나루', '수락동' 등으로 불렸다. '장시(場市)'와 '난장'이 서기도 했으며 각 지역 화물 운송에도 주요 역할을 했단다. 전라도는 물론 충남 서천, 화양, 한산 등지와도 교류가 활발했다고 전한다. 원서포 수문 부근에 서천군 화양면 와초리를 오가는 나루가 있었던 것. 아담하게 솟은 봉우리(사진 중앙)는 조선 시대 해창(海倉: 서울로 보낼 세곡 모아두던 창고)이 있었던 '용머리산'이다. 서포는 금강으로 유입되는 방여강 어귀에 자리한 포구로 고려 시대 진포(조종포)로 불렸다. 이중환의 <택리지>(1751)에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시야가 탁 트인 곳에 서시포(西施浦)라는 큰 마을이 있는데 강경, 창안과 함께 이름난 마을이다"라고 소개하였다.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오성산 자락이 마을을 'C자' 형으로 감싸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예전에는 지금과 사뭇 다른 모습일 터였다. 산자락 아래까지 배가 드나드는 활기찬 포구였던 것. 1920년경 일제의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나포면 일대 드넓은 간석지가 농경지(현 십자들녘)로 바뀌면서 서포는 포구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그래도 객주들은 계속 상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제강。기 지어진 객줏집 확인 ▲  길가에서 찍은 ‘김호겸 가옥’ ⓒ 조종안 ▲  안채와 두 동의 행랑채가 ‘ㄷ’자 모양으로 들어선 ‘김호겸 가옥’(드론촬영) ⓒ 조종안 군산시 나포면 원서포길 46에 자리한 '김호겸 가옥' 모습이다. 김호겸은 일제강.기 서포-군산을 오가며 활동했던 객주이자 농장주로 알려진다. 솟을대문을 지나 마당에 들어서니 안채와 좌우 행랑채가 적당한 거리 유지하며 조화를 이룬다. 전통 한옥 건축미가 돋보이는 안채와 두 동의 사랑채가 'ㄷ자' 모양으로 들어서 있어 조선 후기 사대부 가옥을 연상케 한다. 새끼꼬기와 가마니 짤 때 사용했다는 바윗돌과 우물이 정겨움을 더한다. 김호겸 가옥은 작년 가을까지 그의 며느리와 손자(김준규)가 살다가 지금은 김준규씨가 관리하고 있어 '김준규 주택'으로 불리기도 한다. 김호겸(1889~1948)은 충남 서천군 기산면에서 나고 자랐다. 어렵게 성장한 그는 삼일운동 전후 큰 뜻을 품고 군산에 온다. 이어 감(柿) 시장에서 행상을 시작한다. 근면 성실했던 그는 곧 자리를 잡았고, 1920년대 중반 서포로 이주하여 객주업에 도전한다. 고향에서 부기(簿記)를 배웠던 그는 은행 거래를 트고 융자받아 땅도 사고, 주택도 짓고, 농장을 경영하기에 이른다. ▲  유품이 발견된 사랑채 온돌방 벽장과 오래된 가구들 ⓒ 조종안 이에 대해 김준규씨는 "그동안 모르고 있었는데 몇 년 전 할아버지(김호겸)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복식부기 장부, 은행 당좌거래 통장, 감정서, 소작료 수납부 등 각종 서류뭉치가 사랑채 온돌방 벽장에서 발견됐다"라며 "서류를 통해 할아버지가 거래했던 은행, 객주업 운영 실태, 금산농장(1938년 설립) 경영 방식 등을 상세히 알 수 있었다"라고 부연했다. 자료에 따르면 조선 시대 사대부 가옥 행랑채는 솟을대문 중심으로 문간방, 마구간, 곳간, 부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간방은 하인, 문간 사랑방은 청지기가 기거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주택은 건물주가 객주라서 그런지 좌우 행랑채에 보부상 숙소를 비롯해 상품(각종 농수산물 및 생활용품) 저장 및 전시공간, 목욕탕 등이 나란히 설치되어 있어 이채를 띠었다. 눈길 끄는 대목은 안채 상량문은 중국식 연호(육십갑자), 사랑채 상량문은 일본식 연호(소화 12년) 사용한 것. 상량문에 따르면 안채는 정축년(1937) 음력 2월 9일 사시(巳時: 오전 9∼11시)에 집터 공사 시작. 21일 미시(未時: 오후 1∼3시)에 초석을 놓아 기초를 다졌다. 음력 4월 1일 기둥을 세웠으며, 같은 달(4월) 4일 유시(酉時: 오후 5∼7시)에 들보(梁)를 올렸다. 객주들의 삶과 문화 오롯이 느껴지는 흔적들 ▲  안채와 나란히 자리한 사랑채 ⓒ 조종안 ▲  안채에서 바라본 마당의 우물과 행랑채 ⓒ 조종안 안채와 사랑채가 나란히 들어선 것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처음 지을 때는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돌담을 설치하여 공간을 차단했으나 광복 후 헐어냈단다. 사랑채는 김호겸의 생활 공간으로 두 개의 온돌방을 사무실, 회의실 등으로 사용했다는 것. 몇 년 전에는 사무실 벽장에서 김호겸이 작성한 거래처 명단과 생활 유품이 발견되어 관심을 끌었다. 김준규씨는 우측 행랑채 지붕에 청색 비닐을 씌운 이유도 설명했다. 기와가 풍화작용으로 파손되는 걸 막기 위해 씌웠단다. 그에 따르면 건물 신축 당시(1930년대 중반) 공사장 주변 공터에 가마를 만들고 기와를 구워 사용했다. 이후 안채와 사랑채, 좌측 행랑채 지붕은 광복 후 일부 교체했는데, 우측 행랑채 지붕만 원형이 보존되고 있다는 것이다. ▲  가옥 구조에 대해 설명하는 김준규씨 ⓒ 조종안 "안채에 들어간 기와는 여기에서 직접 구웠고, 목재는 할아버지 고향(충남 서천군 기산면)에서 통나무를 뗏목으로 엮어 가져왔다고 합니다, 사랑채 나무와 기와는 원나포에 있는 오래된 한옥(제각)을 해체할 때 가져와 사용했고요. 따라서 사랑채 기둥과 기와는 최소 250~300년은 됐을 겁니다. 재질이 얇으면서도 강하게 느껴지고, 손끝으로 두드리면 무척 맑은소리를 냅니다. 기와 역시 투박하고 멋스러움은 없지만, 강도가 무척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저기 솟을대문 옆 행랑채 유리창은 쇼윈도 역할을 했답니다. 밖에서 새로운 상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신축할 때 설치했는데, 지금까지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요. 취급 품목도 이번에 발견된 서류에서 80가지가 되는 걸 확인했죠. 옆 공간에 비상문이 설치되어 있고, 그 옆은 마사(馬舍)였습니다. 원래는 다른 용도였는데, 2차대전 말기 왜놈들이 장사를 못 하게 하고 말(馬) 두 필씩 의무적으로 키우라고 해서 마련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말구유도 남아 있지요." 김준겸씨는 "사랑채로 통하는 대문 건너편에 할아버지(김호겸)가 소유한 금산농장 전용 방앗간이 있었고, 해마다 가을이면 농장에서 거둬들인 나락을 이곳에서 방아 찧었다고 하는데 언제인지 모르게 헐렸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지금의 붉은 벽돌담도 원래는 회를 칠한 흰 돌담이었는데 광복 후 벽돌담으로 바뀌었다는 것. '김준규 주택'은 구한말(1900년 전후)에 지은 사대부 가옥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1937년경 신축했음이 확인되었다. 객주가 직접 지어 거주했던 공간을 돌아보기는 처음, 요모조모 건축가의 독창성이 돋보여 흥미로웠다. 한때 상업 문화를 꽃피웠던 이 땅의 객주들. 그들의 생활과 건축 연구에 귀한 자료로 여겨지는 주택과 유품들을 문화재로 지정하면 어떨까 싶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구희진 교수의 <일제강。기 군산객주 김호겸의 상업활동과 농장경영> 김봉선의 <일제강。기, 군산 객주 김호겸과 사람들> 2>정품여성흥분제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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