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분 |
눈밑성형 |
작성일 |
26-10-05 01:37 |
조회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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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피민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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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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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정
"우리 집은 저쪽이었어."
시어머니가 강 건너편을 가리켰다. 어디쯤인지 따라 바라봤지만 내 눈에는 산과 강밖에 보이지 않았다. 집도, 골목도 없었다. 그저 잔잔한 남한강 물이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에 소풍을 오곤 했지."
이번에는 시아버지가 옛이야기를 꺼냈다. 지난 9월, 시부모님과 함께 충북 단양의 '시루섬 기적의 다리'를 찾았다. 새로 생긴 다리를 구경하러 나선 길이었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조금 특별한 나들이였다. 시부모님의 고향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맑은 하늘 아래 보라색 다리가 남한강을 가로질러 길게 이어져 있었다. 다리를 찾은 사람들은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었다. 나 역시 처음에는 "경치 정말 좋다"며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런데 시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풍경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이곳에 사람들이 살았고, 집이 있었고, 길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시부모님의 어린 시절도 있었다.
시루섬은 남한강 한가운데 자리한 섬이다. 이름 그대로 섬의 모양이 떡을 찌는 '시루'를 닮았다고 해서 시루섬이라 불렸다고 한다. 현장에 전시된 '1972년 시루섬 개황도' 앞에서 한동안 발길을 떼지 못했다.
▲ 1972년 시루섬 개황도. 당시 주민들이 살던 집과 길, 밭 등이 표시돼 있다.
ⓒ 김은정
지도에는 지금과 전혀 다른 시루섬이 있었다. 집들이 모여 있었고 길과 밭, 나무가 표시돼 있었다. 어느 집에 누가 살았는지 이름까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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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오래된 지도 한 장이지만 시부모님에게는 달랐을 것이다.
"우리 집은 저쪽이었어."
그 말을 듣고 지도를 다시 바라봤다. 시부모님의 어린 시절을 구체적으로 떠올려 본 적은 별로 없었다. 부모님에게도 당연히 아이였던 시절이 있었다. 친구들과 뛰어놀고, 소풍날을 기다리고,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이 있었다. 그 장소가 바로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었다.
그날의 시루섬
시루섬에는 평범했던 주민들의 삶과 함께 잊을 수 없는 역사가 남아 있다. 1972년 8월 19일, 집중호우로 남한강 물이 불어나면서 시루섬에 큰 수해가 닥쳤다. 갑자기 불어난 물을 피해 주민들은 섬 안에 있던 시멘트 물탱크 위로 올라갔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올라서야 했고, 거센 물살 속에서 한 사람이라도 균형을 잃으면 모두가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주민들은 서로 팔짱을 끼고 몸을 의지한 채 긴 밤을 버텼다. 그렇게 서로를 붙잡고 살아남은 이야기는 훗날 '시루섬의 기적'이라고 불리게 됐다.
하지만 기적이라는 말만으로 그날을 기억하기에는 그 안에 담긴 아픔도 크다. 현장에 남겨진 기록을 읽어보니, 그날의 이야기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겁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흔히 시루섬을 '기적이 일어난 곳'으로 기억하지만, 그 이전에 이곳은 사람들이 밥을 먹고 농사를 짓고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가던 평범한 마을이었다.
"여기에 소풍을 오곤 했지."
시아버지의 그 한마디가 그래서 더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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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가 있기 전의 시루섬에도 봄이 있었고, 소풍을 기다리던 아이들이 있었다. 그 시루섬에 2026년 새로운 다리가 놓였다.
▲ 현장 안내판에 적힌 시루섬 기적의 다리 시설 개요. 다리는 2026년 3월 준공됐다.
ⓒ 김은정
현장 안내판에 따르면 시루섬 기적의 다리는 2026년 3월 준공됐으며 총연장 617m, 보행 폭 1.8m, 주탑 높이 68m의 보행교다. 내진 1등급으로 설계됐으며 초속 28m의 바람에도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최대 3709명이 동시에 건널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설명도 눈에 들어왔다. 숫자로만 보면 새로운 관광시설 하나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이 다리가 특별한 이유는 규모보다는 그 다리가 향하는 곳에 있지 않을까. 다리가 연결하는 곳이 바로 시루섬이기 때문이다. '기적의 다리'라는 이름 역시 1972년 수해 당시 서로의 팔을 붙잡으며 살아남았던 시루섬 주민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 사실을 알고 다리를 걸으니 단순한 출렁다리와는 느낌이 달랐다.
직접 걸어보니 다리는 생각보다 길었다. 걸음을 옮길수록 남한강과 주변 산세가 시원하게 펼쳐졌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까지 떠 있어 어디를 찍어도 사진이 잘 나오는 날이었다. 하지만 나는 자꾸 아래를 내려다봤다. 조금 전 본 1972년 지도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근처였을까.' 시부모님이 살던 집, 매일 오가던 길, 친구들과 뛰어놀던 곳. 정확한 자리를 내가 알 수는 없었다. 수몰된 고향을 가진다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도 내가 온전히 알 수는 없다. 내가 살던 동네가 변하더라도 다시 찾아가 '여기 우리 집이 있었는데', '이 길로 학교를 다녔는데'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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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물속에 잠긴 고향은 다르다. 가고 싶어도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다리 위에서 강을 바라보니 아름다운 풍경 뒤로 보이지 않는 마을 하나가 겹쳐지는 듯했다.
새 관광지가 오래된 기억을 지우지 않았으면
요즘 지역마다 출렁다리와 전망대가 생긴다. 멋진 풍경을 보고 사진을 찍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이다. 시루섬 기적의 다리 역시 앞으로 단양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많은 사람이 찾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간다면 다리를 건너는 것만으로 여행을 끝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리 입구에 있는 안내판도 읽어보고, 1972년 시루섬 개황도 앞에도 잠시 서보기를 권하고 싶다. 왜 이 다리에 '기적'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를 알고 걸으면 발아래 흐르는 강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이곳에는 1972년 물탱크 위에서 서로의 팔을 놓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보다 앞서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농사를 짓고 아이를 키우며 평범한 하루를 살았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곳을 '우리 고향'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에 내 시부모님도 있다.
다리를 다 걷고 다시 한번 뒤를 돌아봤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새로 생긴 보라색 다리부터 눈에 들어왔다. 돌아갈 때는 달랐다. 시부모님이 무심한 듯 건넨 말들이 자꾸 떠올랐다.
새로운 관광지가 생기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 덕분에 사람들이 찾아오고, 잊혀가던 장소가 다시 알려지기도 한다. 다만 새것을 보러 온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던 오래된 이야기도 함께 기억했으면 좋겠다. 다리는 올해 새로 놓였지만, 이곳의 이야기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시루섬 기적의 다리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다리를 넘어, 지금의 우리와 그곳을 고향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의 시간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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